꿈속의 벨라 타르
Damnation+Werckmeister Harmoniak

2013.01.30 머리에 꽃을
          

수풀로 이파리로

어젯밤에는 사시가 되는 꿈을 꾸었다
너를 보는 내 눈동자가 자꾸만 도망갔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으로
한 기억에서 한 기억으로

너는 길 끝에 서 있었다
영원히 도착할 수 없으리라는 암시는
내 눈동자가 너를 지나치기 전의 일이었다

이파리는 건너뛴다
수풀은 끊이지 않는다

환각을 따라 망각하듯이
망각을 하듯 환각을 따라
꿈인 것을 아는 꿈속 꿈처럼

미안하구나 내 눈동자가 옳았다
나는 너를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어
네 곁은 비껴서던 무수한 이파리들

이파리는 다시 건너뛴다
행운에서 불운으로 건너뛰듯이

수풀로 이파리로 수풀로 이파리로

이 수풀을 건너가면 나는 너를 말할 수 있으리라
오래전 보았던 그것이 바로 내 미래임을 알아차리듯

너는 휘파람을 부르듯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너의 목구멍 속에서 솟아오른다

허튼 눈동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해 미워하듯이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수풀로 이파리로 수풀로 이파리로


현대시학 2012년 10월호

2012.10.20 머리에 꽃을
          


I'm Here, It's Okay

2012.10.01 머리에 꽃을
          

이제는 없는 자끄를 위하여

청보리밭에서 청어를 먹는 남자. 청어를 먹으며 홍어를 생각하는 남자.
두 눈에 차오르는 물의 바다로 사라진. 뒤늦은 말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말을 사랑한 남자. 말을 버린 남자. 말을 버리고 말에서 말로 건너뛴 남자.
아무 말이나 하기로 한 남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남자.
밤의 잔느를 사랑한 남자. 잔느의 밤을 사랑한 남자.  

2012.09.04 머리에 꽃을
          


봄의 창문

몇 년전에 심어둔 백합이 다시 싹을 틔우고 있다. 검은 흙을 뚫고 무언가가 제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을 본다. 누군가를 잠시 생각했고 몇 개의 작은 돌을 아직 돋아나지 않은 새싹들 위에 둥그렇게 놓아두었다. 변하지 않는 것들. 봄이면 어김없이 오는 것들. 하지만 지난 봄의 것이 아닌 것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본다. 오래전에 왔다가 갔던 것들을 본다. 오래전에 갔다가 다시 오는 것들을 본다. 잠시 잊었을 뿐, 잠시 잃었을 뿐, 내 속에 있는 그것들을 본다. 차갑고 높은 건물. 창문은 두 개. 각각의 창문에 한 글자씩. 슬, 픔,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본다.  

다시 폭풍우의 밤이다. 여자는 끝내 바다에 도착하는데 세계의 끝에 가려고 했으나 흥미를 잃어버린 얼굴이다. 가지 않아도 이미 그곳이기에. 여자는 걷고 걷는다. 걷고 걷는 그 발걸음의 숫자대로 자신의 기억을 버리기로 한다. 아직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한 여자는 체념이라는 감정과 싸우게 되겠지. 멈추지 않는 한 지속될 어떤 감정들. 소모, 소진. 그 끝에 남는 것은 몇 겹의 물결뿐이겠지만. 그 물결이라는 것이 또...

몸을 잘 움직일 수 없게 되고부터 보이는 모든 것들이, 들리는 모든 것들이 이전 같지가 않다. 나 역시도 어떤 체념의 감정과 싸우고 있는 중인데, 싸운다기보다는 그저 그것들이 왔다 갔다하면서 다른 감정들과 뒤섞이는 것들을 보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 맞겠지만, 어떤 슬픔의 농도가 더 진해진 것은 사실인데, 이 역시 내게 없던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있던 감정이겠지만, 어떤 결정적인 사건에 의해서 그것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왔는데 일부러 한참을 모른 척 하고 있었더니, 이제는 그것들이 어떤 무기력의 형태로 돋아나고 있는데, 이 봄의 새싹은 녹색이 아니라 검정이구나.

2012.04.02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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