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책방 낭독회

같은 호흡으로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갔던
그 충만한 시간을.
하나 하나의 그 목소리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11월 14일 토요일, 포항 달팽이 책방.

2015.11.23 머리에 꽃을
          

자끄 드뉘망의『자연사』에 덧붙여  

자연사를 기다리고 있다.

비닐로 덮인 검은책을 기다리며
작년 겨울, Dazed & Confused에 실었던 글을 붙여 둔다.
------------------------------------------------------------------------------------------------------------------

『뿔바지』이후를 기다리며
이제니

“뿔바지를 벗을 수 있을까./음악 이전의 책을 덮을 수 있을까./말과 사랑한 남자와 헤어질 수 있을까./카페 드 마리에 앉아 a로 시작하는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겨울공원음악은 계속될 거야./벗어도 벗은 게 아니듯/덮어도 덮은 게 아니듯/헤어져도 헤어진 게 아니듯”  

  죽음 이후에 남겨진 목소리를 듣듯 자끄 드뉘망의 미발표 시를 읽고 있다. 어쩌면 그는 바로 어제 이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밤새 눈이 내린다.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처럼 그의 시는 다시 한 번 지워진다. 유년 시절의 아득한 자장가처럼. 자장가로 위장한 죽음의 노래처럼. 그의 목소리는 시들어버린 금발의 빛을 띠고 있다. 차갑고 단단한 것. 납처럼 달고 구름처럼 깊은 것. 나는 그의 목소리를 덧입은 채로 그의 문장에 몇 줄을 덧붙인다. 음악의 루머. 루머의 음악. 이제 그의 목소리를 덧입는 것은 뿔바지를 덧입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뿔바지는 뿔바지. 뿔라롱은 뿔라롱. 우울한 저녁이면 나는 뿔바지는 뿔바지 혹은 뿔라롱은 뿔라롱이라는 주문을 외우곤 했다. 뿔바지의 뿔라롱 혹은 뿔라롱의 뿔바지와도 같은 단어들을 중얼거리고 있으면 어쩐 일인지 우울은 점점 더 넓어지는 방식으로 점점 더 깊어지곤 했다. 그것은 나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것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뿔바지는 무감함을 가장한 채로 점점 더 내게 있을 수 없는 단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단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종종 그의 입말 속에서 잠들었으며 여름이면 없는 왜가리 해변에서 벌거벗고 수영을 했고 겨울이면 없는 겨울 곡마단의 없는 겨울 연주를 흥얼거렸다. 어떻게 넌 내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 이렇게도 슬프고 뾰족한 흠집을 낼 수가 있는 거지. 물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목소리를 덧입은 나의 입말이 대답했다. 문체는 언제나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간다. 음악은 언제나 분위기에 의해 흔들린다. 뿔바지가 너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말은 우리가 이미 아주 작고 슬픈 언어 공동체의 거주자라는 증명이다. 나는 내 입말 속에 잠든 자끄를 깨우지 않았다. 그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들어버린 금발의 빛으로 나는 그에게 물었다. 뿔바지 이후는 언제쯤 읽을 수 있는 거지. 그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목소리를 덧입은 나의 입말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이후의 책은 있어도 없어도 좋겠지. 세상의 모든 음악 이전의 책이 그러하듯.『뿔바지』이후는 이미『뿔바지』이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니까. 밤새 눈이 내린다. 어느 날의 자끄처럼 나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눈이 녹기를 기다렸다.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를 또 하나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고. 있어도 없어도 되는 이전과 이후 사이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너는 잠들지 않았다. 친구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자끄 드뉘망의 이름 역시 그러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믿고 싶어서 그렇게 믿고 있다.

2015.11.19 머리에 꽃을
          

해질 무렵 동네 한 바퀴

바다오리 세 마리가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점이 될 때까지, 한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었지만.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 오고. 둘레길 초입은 빛이 들지 않았다. 바닥엔 낙엽이 떨어져 쌓여 있고 머리 위로는 나뭇잎이 서로의 손을 맞잡듯 작고 낮은 궁륭을 이루고 있었다. 다닥다닥한 나뭇잎 사이로 어둑어둑한 하늘이 보이고. 잘 위장된 엄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레길을 좀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 이백 미터도 되지 않는 그 어두운 구간만 반복해서 대여섯번 정도 천천히 왔다갔다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 냄새가 좋았다.

바다를 보면. 그 쉼없는 파도를 보면.
그 위를 쉼없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그것들의 눈을 보면......

2015.11.10 머리에 꽃을
          

일요일들

일요일 저녁이다.
커튼 너머로 오래오래 빗소리가 들려온다.

막연한 생각과 분명한 이미지.

2015.11.08 머리에 꽃을
          

CLOUD SCISSORS_ From lo wie

지난 1월 말 lo wie로부터 받은 구름 조각들.

마음이 어두워질 때마다 이 구름 조각들을 작은 종이 봉투에서 꺼내 이리저리 배열해보곤 했다. 하나 하나의 단어들이 하나 하나의 단어들에게 스며들었다가 어느 결에 사라지기를 바랐다. lo wie는 이 단어들을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속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취리히와 서울에서. 그리고 관객 없는 듀오 공연에서. 구름과 구름 곁을 맴도는 이 문장들이 연주되고 있다고도 했다. 한 문장 한 문장 구름처럼 사라져가는 페이지들. 언제고 그의 시집도 읽게 되겠지. 시집이 아니어도 될 한 권의 책. 공유하고 있는 소리와 침묵을 또 다른 페이지에서 또 다른 여백으로 또 다시 읽게 되겠지. 몇 해전 어느 저녁. 흔들리듯 걸어가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오래된 친구의 느낌으로.  

*

엊저녁 잠들기 전에 들었던 곡은 가만히 돌아앉아 숨죽여 흐느끼는 울음 같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들었던 곡은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 순간적으로 응축되는. 그 끝이 훤히 내다보여서 슬픈. 그리하여 영원히 유예되고 유예되는 어떤 절정과도 같았다.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들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 날들이다. 이제는 그것들에 대한 열정도 희미해졌지만. 좋아하던 밴드 이후로. 그것들이 그저 하나의 포즈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 서로간에 특별한 변별점도 찾을 수가 없으며. 아주 노골적인 방식으로 청자들의 감정선을 자극하겠다는 듯이. 지극히 예측 가능한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실망을 넘어 분노의 감정마저 들었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떤 류의 음악에 이끌리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슬픈 기질 탓이기도 하겠지.  

무한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것들.
언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벗어나 있는 것들.
그곳에서 끝없이 열리는 무수한 장면들. 무수한 목소리들.

*

지난 주말 교회에서 들은 성경 구절은 구약 룻기 1장 1절에서 5절 말씀.
우리는 왜 종종 실패할까요. 설교는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머리를 숙인 채로. 무릎 위에 내려놓은 수첩에다. 몇 주일 내로 마감해야 할 원고들의 목록을 적고 있었고.

그날 저녁에 펼친 키냐르의 신간 『신비한 결속』의 첫 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가 가는 곳에 나도 가리라.
그가 사는 곳에 나도 머물겠노라.
그가 죽는 곳에 나도 묻히리라.  - 룻기. (제1장 제16-17절 참조.)

그러니까 같은 날 오전에 교회에서 읽었던 성경 구절과 이어지는 문장이다.
룻기 1장 16절에서 17절을 성서원에서 출간된 성경전서에 적힌 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영성적으로. 암울하고 혼란한 시대에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함께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이주해온 이방 여인 룻에 관한 이야기다. 신실한 신앙과 지극한 효심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묘사되어 있다.

*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자면. 모든 것이 다 하찮고 모든 것이 다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부질없다고 느끼면서 어떤 허무를 견디는 것. 그러나. 이 허무 또한 하나의 허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 동굴 속 그림자라는 것도 결국은 외부의 어떤 사태 혹은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현상학적인 그늘이 아니라. 하나의 관습처럼 고착화된 제 자신의 오래된 생각의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그렇게 자신의 내면 저 밑바닥에 고여서 굳어 있는 어떤 사고의 패턴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 그러니 부질없는 것은 이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세계는 그저 있다.
감정을 섞지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는 것.

*

오랫동안 잠을 못 자서인지 두통은 더더욱 심해지고. 며칠 전에는 부르고 싶었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심정으로 구구단을 외워보았다. 구구 팔십일. 구구단은 그렇게 끝난다.  

*

그럼에도 때때로 가슴을 후벼파는 어떤 음들이 있다. 어떤 목소리들이 있다.
그곳에서 쉰다.

*

이상할 것도 없는 우연들이 이어지고 있는 날들이다.

2015.06.12 머리에 꽃을
  Login   [1] 2 [3][4][5][6][7][8][9][10]..[35] >>
Zeroboard / skin by 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