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꽃

여기저기 여름꽃이 많이 피었다. 흰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티 없이 무람 없이 환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서늘함이 있다. 바닥을 향하는 서늘함. 투명하고 빈 공간이 있는 하얀색이다. 죽음 직전의 명징한 정신이 그럴까. 죽음 이후의 눈꺼풀 속 어둠이 그럴까.

글자로 된 것들을 읽을 수 없는 날들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2015.05.25 머리에 꽃을
          


빗나가고 빗나가는
빛나는 삶

이제니

기차는 얼음의 나라로 간다고 했다.
하얀 눈 위의 하얀 나무 속을 건너간다고 했다.  

너는 얼음도 구름도 바람도 물도 없는 곳에 도착한다. 너는 작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세계는 천장 한 귀퉁이로 모여드는 세 개의 직선에 지나지 않았다. 너는 하나의 꼭짓점에 모인 세 개의 직선을 늘릴 수 있는 데까지 늘리고 늘린다. 직선은 점점 곡선으로 휘어진다. 휘어진 곡선이 너를 향해 모여든다. 무수한 사람이 네 속에서 들끓고 있다. 무수한 목소리가 네 목소리 위로 내려앉는다. 무수한 길들이 너를 지나간다.

한 발 걸어가면 한 발 멀어지는 들판이라고 했다.
기차는 하얀 눈 위의 하얀 나무 속을 건너가고 있다고 했다.

너는 기차에 실려 간다. 너는 마비된 채로 나아간다. 너는 시간에 굴복한다. 너는 중력에 결박된다. 너는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움직이고 있다. 밤과 낮으로. 머리와 영혼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몸 밖의 일인가 몸 안의 일인가. 몸의 안과 밖이 함께 움직이며 너를 데려간다. 너를 데려가는 곳은 언젠가의 너 자신이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매순간의 너 자신이다. 너는 작아지면서 어려진다. 너는 건너가면서 여려진다.  

열리고 열리는 여리고 어린 삶.    

기차는 달리고 너는 얼음처럼 누워 있다. 열린 차창 너머로 눈이 내린다. 물의 자리로 얼음이 온다. 얼음의 자리로 얼음의 나무도 온다. 얼음의 나무 곁으로 얼음의 바람도 온다. 얼음 이전에는 물이 있었다. 물 이전에는 구름이 있었다. 구름 이전에는 네가 있었다. 너 이전에는 구름이 있었다. 구름 이전에는 물이 있었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순차적인 동시에 일순간에. 사물이 자신의 자리로 도착하고 있었다. 너를 뒤쫓듯 사물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한 발 멀어지면 한 발 나아가는 들판이라고 했다.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는
믿기지 않는 삶.

너는 사물들의 자리에 사물처럼 놓인다. 너는 너 자신의 고통에 순응한다. 너는 네가 알고 있던 사물들의 윤곽 없는 윤곽에 압도당한다. 흰 도화지에 그릴 수 있는 것은 희디흰 눈뿐이라는 듯이. 검은 사각형을 지나는 검은 사각형을 바라보듯이. 기차는 이전의 나라로 간다고 했다. 하얀 눈 이전의 하얀 나무 이전의 들판 이전의 들판을 건너간다고 했다. 들판 이전의 너에게로 가고 있다고 했다. 열린 차창 너머로 눈이 내린다. 물의 자리로 얼음이 내린다. 무수한 나무들이 무수한 빛이 되어 줄지어 달아나고 있다. 너는 달아나는 속도로 빛나는 것들을 본다. 달려가는 속도로 물결치는 것들을 본다.      

빗나가고 빗나가는
빛나는 삶

얼음의 나라는 얼음의 나무와 얼음의 바람과 얼음의 구름이 모여든다고 했다.  

천장도 바닥도 없는 곳이었다. 너는 얼음의 숲에 도착한다. 뒤늦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뒤늦은 이름으로 도착한다. 얼음의 나무 곁으로 얼음의 바람이 온다. 웃으며 춤추며 웃는 얼굴이 온다. 웃으며 춤추며 울고 우는 목소리도 온다. 사물들은 꿈에 저항하고 기억을 배반하고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폐허의 자리에서 울리는 서로의 소리를 덧입고 있었다.

기차는 얼음의 나라로 간다고 했다.
하얀 눈 위의 하얀 나무 속을 건너간다고 했다.  

뜻 없이 마음 없이 흐르듯 흐르듯 건너간다고 했다.


현대시학 2015년 5월호

2105.05.20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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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서 영원까지
이제니  

고양이는 구름을 훔쳤다. 슬픔이 그들을 가깝게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너의 이름뿐이다. 한때의 기억이 구름으로 흘러갔다. 흔들리는 노래 속에서 말없이 걸었다. 침묵은 발자국소리로 다가왔다. 돌의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의 저편에서 날아오는 것. 시간의 저편으로 달아나는 것.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어둠은 빛을 발하며 들판으로 모여 들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영원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 한때의 구름이 기억으로 흩어졌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검은 조약돌. 바다는 오늘도 그 자리에 없었다. 물결이 너를 데려갔다. 어둠이 너를 몰고 갔다. 휘파람을 불면 바람을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너의 이름은 나와 돌 사이에 있었다. 나의 이름은 너와 물 사이에 있었다. 구름은 물과 돌 사이에 있었다. 돌의 얼굴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물결은 왔다가 갔다. 울음은 갔다가 왔다. 바람은 돌이킬 수 없었다. 고양이는 노래를 훔쳤다.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희망이 그들을 멀어지게 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의 이름뿐이다. 나의 이름 위에 너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너의 이름 위에 돌의 마음을 올려 두었다. 발자국소리는 침묵 뒤에 다가왔다. 노래를 부르면서 말없이 흔들렸다. 빛은 어둠을 감추며 언덕으로 달려갔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돌의 마음. 네가 내게 주었던 것은 검은 조약돌. 너는 너의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나의 이름을 감추었다. 우리의 이름 위로 우리의 그림자가 흘러갔다. 구름이 나를 나무랐다. 나무가 바람을 뒤덮었다. 물결이 너를 데려갔다. 물결 뒤에는 조약돌만 남았다. 약속은 남은 사람 혼자 간직했다. 바람은 구름 뒤로 사라졌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멀리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영원을 보았다고 믿었다.

현대시학 2015년 5월호

2015.05.20 머리에 꽃을
          


끝없이 끝없는
이제니    

​은박의 박제의 날개의 계단 아래 모여 있었다. 철 지난 노래를 부른 것은 어제의 일이었다. 모두에게 사랑 받으려고 한 것이 나의 잘못이다. 깨달음은 네 눈동자 속에서부터 왔다. 노래는 모래로 흩어졌다. 모래는 노래로 흩날렸다.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불은 불꽃을 품고 있었다. 불꽃은 꽃에 속하지 않았다. 불꽃은 나무에도 속하지 않았다. 어른거리면서 춤추는 것. 우리는 그것을 벽과 벽 사이의 불화로 이해했다. 불과 불 사이의 어둠이 문득 밝았다. 나무에 속하지 않는 불꽃은 나뭇가지가 없었다. 나뭇가지가 없는 불꽃에는 잎 하나 매달려 있지 않았다. 나무를 생각하는 기분은 나무의 키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나무가 되는 상상은 나무가 되지 못하는 오늘을 일깨웠다. 끝없이 열리는 네 눈동자 속에서 끝없이 열리는 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기도는 무릎을 꿇어본 적이 있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끝없는. 네 잃어버린 눈빛을 대신하는 불꽃 속에서. 신음은 앓고 있는 사람이 견디려다 견디지 못해 내뱉는 몸의 탄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은빛의 계단을 지나 은박의 박제된 시간을 지나. 끝없이 끝없는. 얼굴 없는 목소리를 지나. 어제의 불꽃이 어제의 노래로 번져가고 있었다. 반음의 도형은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기억의 가장자리를 떠도는 것은 흰색의 포말이다. 밀려가는 무늬 뒤로 한 겹의 무늬가 더 흐르고 있었다. 동심원이 사라지듯 떠올리는 것은 이제는 없는 자리일 뿐이다. 기억에 남아 있는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었다. 긴 호흡으로. 긴 나뭇가지의 자세로. 여섯 줄 혹은 열두 줄의 현악기가 울리듯이. 현을 튕기는 손가락의 순서대로 입을 연다면 말하지 못한 고백의 문장이 완성될지도 몰랐다. 겨우내 자라왔던 나무의 순을. 가까스로 자라난 그 여리고 어린 순을. 입에서 입으로. 눈에서 눈으로. 잦은 기침과 얕은 호흡 사이에서. 노래했습니다. 노래했습니다. 끝없이 끝없는. 나무들의 행렬 속에서. 끝없이 끝없는. 나무들의 죽음 속에서. 간신히 꿈을 더듬어. 헐벗은 눈동자 속으로 날개를 펼쳐. 네 잎으로. 세 잎으로. 두 잎으로. 한 잎으로. 점점이 사라지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박자를 맞췄습니다. 은박의 박제의 날개의 계단 아래 모여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 것은 철 지난 노래를 부른 뒤의 일이었다. 벽과 벽을 물들이는 것은 꽃과 나무의 그림자였다. 타오르면서 스러지는 것. 우리는 그것을 눈빛과 눈빛 사이의 오해로 이해했다.​

현대시학 2015년 5월호

2015.05.20 머리에 꽃을
          

22세기 사어 수집가_ 버섯의 시
이제니

동물원: 살아 있는 동물을 모아 사육하면서 일반에게 관람시키는 곳.

이따금씩 수풀 저 너머로 이름 모를 짐승들이 들썩이며 풀썩이며 키 낮은 나무와 풀 사이를 건너뛰곤 했다. 그들에겐 언어가 없었다. 그들에게 언어가 없다는 말은 인간 역시 동물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동물의 말없는 삶은 동물들 스스로에게 커다란 재난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존재 조건이 되기도 했다. 정교하게 분화되고 조직된 언어를 간직하지 않은 대신 동물은 인간 너머의 세계에서 그들끼리 온전하고 완벽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동물의 눈은 인간이 평정심이라고 부를 만한 그것과 닮은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다. 냉혹한 동시에 단단하고 빠르고 부드러운 빛. 순도 높은 결정처럼 뭉쳐진 내면의 힘. 그 눈빛 속에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결기가 있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묵직한 중심이 있다. 해마다 자신들이 머물렀던 장소로 날아와 알을 낳고 부화시키며 한 계절을 지내다 다시 돌아가는 철새들의 그 위대한 궤적을 일일이 다 살펴보지 않더라도 각각의 그 모든 동물들이 얼마나 높은 차원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연 재해나 재난 앞에서도 그들은 그저 그들의 일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극심한 홍수 속에서 강의 가장자리까지 떠내려간 물위의 둥지를 바라보는 물새들은 한탄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한 번 더 강물 위를 날아올라 무심히 무정히 떠도는 물풀 몇 줄기를 그 약하디 약한 부리로 물고 돌아올 뿐이다. 허물어지고 있는 자신의 둥지 위에 다시 한 번 더 얇디얇은 한 줄기 물풀을 얹어 놓을 뿐이다. 그들의 눈동자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그들은 시계처럼 움직이며 지독하게 견딘다. 견딘다는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바로 이 순간을 산다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걱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다. 후회와 걱정과 반성이 없는 삶. 그리고. 그러나. 어느 겨울 보았던 눈 내리던 동물원의 기억. 한적하고 한적한. 그 겨울의 동물원에는 내가 보고자 했던 동물이 없었다. 진정한 의미로 그 무엇도 살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한순간의 호의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죽어가는 동물들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파멸로 치닫고 있던 인간 세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죽음: 죽는 일.   

어둠이 세계의 끝까지 내려앉은 숲 속에 앉아 언젠가 있었고, 언젠가 있을,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죽는 일은 미지에 속하는 일이다. 조금씩 조금씩 시간 속으로, 시간 밖으로, 아니 다시 시간 속으로, 아니 다시 시간 밖으로, 사라진다 사라진다. 미지의 영역 속으로. 스며들고. 늙고. 죽는다. 몸이 떠나도 몇 세기에 걸쳐 이름만은 남듯이. 그렇게 살아남은 이름이 기어이 사라져 갈 때에도 어떤 여운처럼 목소리는 내내 남듯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침묵처럼. 울음처럼. 꿈처럼. 물처럼. 그림자처럼. 거듭되는 생을 통해 영혼은 점점 더 나은 차원으로 나아간다. 더 나은 차원으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믿고 싶어서 믿는다. 남겨져 떠도는 목소리 너머에서 오늘 다시 저 수풀의 그늘 아래로 보이지 않는 버섯이 자라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죽음만이 삶이다. 두려움 없이. 죽음으로 가는 삶만이 시詩를 불러들인다.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죽는다.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태어난다.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수한 목소리들을 오늘 다시 듣는다.​

​-『22세기 사어 수집가』(2014년 11월 발행) 중에서.

http://www.yes24.com/24/goods/1516915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968773




2015.05.17 머리에 꽃을
          

체첵_ 꽃의 또 다른 이름
이제니​  

첫 시집을 내고 난 다음 해 겨울이었다. 이전과 같은 것은 쓸 수 없었다. 이전과 같은 것은 쓰기 싫었다. 멀리 멀리로 떠나고 싶었다. 멀리 멀리로 가면 무언가 다른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멀어지려면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리적이고도 상징적인 거리를 넘어서서 몸으로 뚜렷이 각인될 수 있는 물리적인 거리를 건너가고 싶었다. 머나먼 시베리아라면. 그 혹한의 땅이라면. 무한한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급히 넘겨야 할 원고들을 넘기고. 써야 할 원고들을 가방 깊숙이 챙겨 넣고. 시베리아로 떠났다. 끝없는 설원 위를 끝없이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생각하면서. 눈보라 휘몰아치는 정적 속의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면서.

북경 공항을 경유해서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시베리아에 도착했다. 세상 끝에라도 가듯 길을 나선 것치고는 너무나도 간단히 도착해서인지 진정 이곳이 그토록 그리던 시베리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냉동 창고 같은 영하의 날씨만이 떠나온 거리를 가늠하게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낭만적 기대와 익히 예상했던 낙심 속에서 낯설고도 낯익은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횡단 열차를 타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했다. 너무 멀리 떠나려 해서인지 죽음 앞까지 밀려갔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허름한 지역 병원을 시작으로 조금씩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전신 마비 상태로 한 달간 병원에 있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병원 침대차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여기저기로 실려 다니는 것뿐이었다. 첫 번째 병실은 긴 직사각형이었다. 두 번째 병실은 좀 더 긴 직사각형이었다. 세 번째 병실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이었다. 사각의 네 귀퉁이마다 세 개의 직선이 모여들었고 그 몇 개의 선분과 몇 개의 면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사각은 점점 크게 점점 작게 그 크기와 배열을 바꾸었고 삼각에서 사각으로 다시 사각에서 삼각으로 순간순간 분열하곤 했다. 평생 걸을 수도 없이 마비 상태로 누워 지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사각의 모퉁이는 매섭고도 냉혹한 눈초리를 띠기 시작했고 병실의 사방 벽면은 얼음보다 더 투명한 빛으로 녹아내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하루하루 날들은 잘도 흘러갔고. 통증을 덜기 위해 수시로 맞은 모르핀과 모르핀 사이에서.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환각과 망각 사이에서. 깊고 어두운 밤이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듯이 두 눈이 절로 번쩍 뜨이는 날이 잦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환히 보이는 천장의 네 귀퉁이를 올려다보면서. 내가 왜 이 머나먼 땅으로 오려고 했는지. 이곳에서 무엇을 보려고 했는지 생각했고. 매순간 모양을 바꾸는 사각의 면과 색이야말로 내가 오래도록 꿈꾸어왔던 실현 불가능한 문장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 모든 문장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은 후회처럼 곱씹었고. 마리나 마샤 나타샤 알리샤 올랴 올가 베라 나자 안나 이리나 세르게이 발렌티나. 약과 친절을 가져다준 사람들의 이름과. 우꼴 스핀나 보인나 발리엣 구샤츠 무쏘르. 살기 위해서 익혔던 낯선 땅의 단어들을. 조용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보고는 했다.  

한 달 남짓 입원해 있는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저녁 일곱 시 무렵이면 병실 청소를 하러 오는 고려인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체첵이라는 이름을 가진 키가 작고 표정이 그리 많지 않은 여자 아이였다. 근처의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저녁마다 병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창백한 낯빛의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모국의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 아이를 보니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어서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청소를 하면서 병실에 오래 오래 머물러 있기를 바랐지만. 여자 아이는 몹시도 말이 없었고 늘 조금은 피곤해 보였다. 날들은 흘러갔고. 그러는 사이사이 여자 아이와도 서툰 언어로 서로에 대해 몇 마디씩 소소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 저녁. 응급 수술 후에도 줄어들지 않는 통증과 여전한 마비 상태 속에서. 이 병실에서 걸어 나갈 수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한국으로 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어떤 비행 편으로 이동을 해야 다친 몸의 이차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암담하고도 막막한 상황들을 생각하면서 울고 있는데 그 여자 아이가 청소를 하러 들어왔다. 울고 있는 얼굴 때문인지 여자 아이는 내 침대 머리맡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자꾸만 자꾸만 말을 건넸다. 허술한 철제 침대를 자기도 모르게 쓰다듬는지 침대가 살짝 살짝 흔들렸다. 침대 머리맡이 그 아이의 온기로 인해 따뜻해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다는 듯이 내 마음도 흔들렸다. 내가 한국에서 왔고 글을 쓴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체첵은 자신의 이름이 한국말로 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목 뒷덜미를 가리키며 무언가 보여주려고 멀리 침대 발치로 가 섰는데. 목을 쉽게 가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가리키는 그것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체첵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리고. 그런 뒤. 휴대폰 화면에 찍힌 체첵의 목덜미를 보았을 때.  

꽃.  

그 목덜미 한가운데에는 '꽃'이라는 한글 하나가 문신으로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꽃. 나는 그토록. 슬프고. 아름답고. 강렬한. 그 어떤 단어를.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누군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잊지 않기 위해서. 잃지 않기 위해서. 무언가 기억하기 위해서. 무언가 간직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다 새겨 놓은 간절하고도 간절한 모국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 먼 이국의 땅으로 밀려가. 기어이 보려고 했던. 보아야만 했던. 단 하나의 낱말이었다.  

이후로 시베리아에서 서울로 옮겨와 한 차례의 수술을 더 받은 뒤 몇 군데의 병원을 더 거쳐서 다음해 늦봄에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은 직사각형에 가까운 정사각형이었다. 그것은 어쩐지 떠나기 전과는 조금 다른 너비와 넓이를 갖고 있는 것 같았고. 하루 이틀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혹은 내 머릿속 기억이 틀렸다는 듯이 조금씩 조금씩 내 두 눈은 천장의 네 모서리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날들은 잘도 흘러갔고. 오랜 재활의 날들을 지나왔고. 엎드릴 수도 앉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천장을 향해 누운 채로. 작게 겹쳐 접은 종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그 작은 종이 위로 천천히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 연필로 써내려갔던 날들을 건너왔고. 사이사이 그렇게 썼던 시편들과 함께 두 번째 시집이 나왔고.  

아픈 허리를 하고 앉아 이제야 그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무언가로부터 멀어지려고 멀리 가려고 발버둥치는 시간들을 온전히 겪어야만 또 다른 무언가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한은 누군가 무언가가 너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시간을 요구한다고. 저 멀리 극단까지 극한까지 가라고. 그렇게 갈 수밖에 없게 밀어붙이고 있음을 느끼면서. 그렇게 며칠 전 저녁.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한국으로 돌아오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속에서. 꼼짝없이 누워 뷰파인더도 보지 못하고 달리는 차창 쪽으로 손만 뻗은 채로 하염없이 찍어두었던 설원의 사진을 그제야 제대로 열어 보면서. 문득 체첵이라는 이름을 떠올렸고. 왠지 사무치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멀리 멀리에 두고 온 그 이름의 명확한 발음을 듣고 싶어서 웹사이트를 열어 체첵이라는 낱말을 검색해보았다. 체첵цэцэг이라는 낯선 기호 아래에는 꽃, 꽃을 피우는 식물, 화초, 화훼(花卉), 관상식물, 이라는 뜻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뒤. 체첵이라는 낱말 옆의 스피커 버튼을 눌렀을 때. 째-짹-. 그것은 누군가 낮고 무심한 목소리로 흉내 내는 깊은 숲속 어리고 작은 새의 울음소리 같았고. 채-찍-. 그것은 후려칠 수 없을 정도로 여리고 빛바랜 가죽 끈을 부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영원이란 것은 없다는 듯이 반복 반복 그 소리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결국 쓴다는 것은 자신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슬픔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가진 지극히 단순한 낱말 속에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또 다른 소리와 의미를 다시 새롭게 겹쳐 새겨 넣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일상 속의 아주 사소한 구멍. 아주 작은 틈새로. 추락하듯이 나아가면서. 비틀거리면서. 머뭇거리면서. 망설이면서. 주저하면서. 잘못 말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고쳐 말할 수밖에 없는 언어적 상황 속에서. 그렇게 세계와 사물들 앞에서 매번 뒤늦은 존재로서. 언어적 말더듬이 상태에 직면한 채로. 자기 지시적인 단어들을 반복반복 중얼거리면서. 그것들의 자리를 매번 바꾸면서. 나무는 나무야. 나무는 나무지. 나무는 구름이 아니잖아. 그런데 왜 나무가 구름이면 안 되는 거지? 나무는 구름이야. 나무는 구름이지. 나무가 구름이면 구름은 나무야. 그렇게 오늘 다시. 나무는 구름이고 구름은 나무라는 사실을. 꽃은 새이고 새는 꽃이라는 사실을. 존재론적으로도 그러하고 언어 논리적으로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나는 우주고. 우주는 나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쓴다는 것은 선행된 그것에 비하면 늘 뒤늦을 수밖에 없는 일이고. 늘 쓰려는 그것을 망치는 일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돌아오는 봄이 지난날의 봄이 아니듯이. 매번 돌아오는 꽃이 지난 계절의 꽃이 아니듯이. 언어적 문맥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날아오르는 순간을. 그렇게 자기개시의 순간이 활짝 펼쳐지기를 기다리면서. 그렇게 시의 몸을 입은 언어가. 시의 혼이 흐르는 언어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오래된 의미의 그늘을 지워내고. 한없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추론의 언어로 다시 움직여가기를.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시 새로운 봄이고 새로운 꽃이다. 언제까지나 어리둥절한 채로.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바라보면서. 오늘 나는 다시 봄을 모른다. 오늘 나는 다시 꽃을 모른다. 그리하여 어느 날 다시. 꽃의 또 다른 이름 앞에서 문득 울게 될 때까지.

현대시학 2015년 5월호 산문



2015.05.15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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