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식별하기

그 나무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무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평생 제 뿌리를 보지 못하는 나무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눈과 그 귀와 그 입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밤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있다. 나는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너도 밤의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밤과 나무는 같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늘과 그늘 사이로 밤이 스며들고 있었다. 너는 너와 내가 나아갈 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잎과 잎이 다르듯이. 줄기와 줄기가 다르듯이. 보이지 않는 너와 보이지 않는 내가 마주보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본 나뭇잎이었다. 내가 나로 사라진다면 나는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이라고 생각했다. 참나무와 호두나무 사이에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사이에서. 가지는 점점 휘어지고 있었다. 나무는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밤은 어두워 뿌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어스름과 어스름 사이에서. 너도밤나무의 이름은 참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문학과사회 2015년 봄호  

2015.03.15 머리에 꽃을
          


아트만의 나날

책상에 앉아 무언가 쓰려고 하다가 손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책을 펼쳤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나의 무지와 무기력에 혐오를 느끼는 분들께,
나 변하지 않으렵니다.'

진이정의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중의 한 문장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런저런 시들을 손글씨로 깨알 같이 적어 많이도 선물했었는데, 진이정의 시 역시도 참으로 많이 써주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아트만의 나날들>이란 시를 좋아했었는데, 진이정을 즐겨 읽던 이십대 중반 무렵, 같이 밴드를 했던 친구들이 이런저런 사고로 죽거나 돌연사하는 일들이 겹치면서 어떤 그늘이 드리워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친구들이 죽고 어느 결에 그렇게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거제도로 내려왔고. 인도 음악과 명상에 빠져 지냈고. 신실하고도 신산한 날들 속에서 진이정의 시가 새삼 다시 위로가 되어주었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진이정의 같은 시집을 두 권이나 샀었는데. 지금 책상에 있는 건 2000년 6월 5일에 2판 3쇄로 발행한 시집이다. 그것보다 더 먼저 산 시집은 아마 거실의 시집 코너 책꽂이에 아름답고 쓸쓸하게 꽂혀 있겠지. 진이정을 처음 읽었던 이십대 시절만 해도 그는 내게 뭔가 어떤 어른처럼 느껴졌었는데 이 시들을 썼던 시절이 고작해야 이십대 후반 정도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을 두드린다. 시집 곳곳에 서려 있는 죽음의 기미. 그리고 그렇게 죽음 앞에서 써내려간 문장들을 그가 요절한 나이보다 열살이나 더 먹은 지금 다시 읽고 있는 나는.


아트만의 나날들
진이정

약 냄새,
돈은 슬퍼라,
어린 육체보다 더 슬픈 십원짜리 지폐,
황혼, 두견, 소양강 처녀보다 더 슬픈
내 어릴 적의 십원짜리 지폐,
미국 중앙정보부가 노나주었던 십원짜리 지폐,
어느덧 나의 사회과학적 상상력은 그 사내의 선의를 믿지 못하네
코끝에선 약냄새가 났고,
미친 듯이 돈을 뿌리는 백인 병사의 곁을 지나
적산가옥 앞길을 지나
포대기에 업힌 나는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다
외삼촌의 술주정이 약냄새에 섞여 날 어지럽게 한다
박카스를 한 병 마시곤 다시 잠든 외삼촌
그는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의 아트만은 사라지고 없다 한다
그러니 거룩한 브라만의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내가 그리워하는 건
박카스에 취한, 구체적인, 생생한 그의 아트만이다
나는 그런 현실감에 목마른 것이다
자동차 바퀴살을 호이루라고 부르던 시절,
<빵꾸 나오시> 집에서 나는 살았다
일용할 봉지쌀과 함께 퇴근하던 외삼촌의 구체성은
저 머나먼 브라만 속으로 사라졌다 한다
그러니 내가 브라만을 좋아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봉지쌀의 아트만이 사라졌듯이, 내 유년시절의 아트만들도
이젠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기분을 슬프다고 하는 것일까
이 범아일여의 천지에서 아니 슬픈 것이 무엇이던가
오십환짜리 백동전처럼 남루한 슬픔이지만,
슬픔의 화폐개혁은 아직도 기약 없어라
슬픔의 지폐에서 길어올린 육십년대 꼬마의 쾌락들,
땡이와 연필 함대, 크라운 산도, 코롬방 아이스케키...
고 코묻은 아트만들,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다, 라는 말씀조차
내겐 더 이상 위안이 되지 않는다
브라만을 믿지 않듯, 지금 나는
온갖 종류의 아트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렇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거의 삼십 갑자가 흘렀다
그리고 나는 중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난 구체성의 신, 일상성의 보살만을 믿기로 한 것이다
덧없음의 지우개 앞에, 난 흑판처럼 선뜻 맨살을 내밀 뿐이다
아트만이 무너진 마당에
인생이 꿈이란 건, 그 얼마나 뻔한 비유인가
이제부터 나의 우파니샤드는
거꾸로 선 현실이다
하지만 못내 구체적인, 빵꾸 나오시 가게의 흙바닥에 굴러다니던
호이루와 몽키스패너들의 그 완강함이다
나, 아트만 없이 숨쉬고 있다
브라만에 구걸하지 않으리라
난 이제서야 그 옛날의 십원짜리 지폐를 꺼내든다
그 슬픈 돈을 내고 구체적인 박카스 한 병 사먹으리라
슬픔의 드링크에 취해, 내내 위안받으리라
나라는 물건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라는 각성이
둔한 내 뒷골을 쑤셔야만 하리라
하하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니,
그럼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단 말인가!  


2015.02.10 머리에 꽃을
          


Anything Anywhere

새로운 책상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쓰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는 말 그대로 새로운 무언가일 뿐. 날개가 달려 있거나 뿔이 달려 있지는 않다. 손이 있거나 발이 있지도 않다. 무언가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부르는 사람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는 비가 왔고.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이미. 벌써. 여전히. 아직도. 내일이 되어서야 비가 오지 않았던 날로 온전히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하여. 또 어떤 곳에서는.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아니. 이웃 마을에서는. 폭우가 쏟아졌을 것이며. 폭우가 쏟아지고 있을 것이며. 그치지 않는 폭우 속에서 또 누군가는 울기도 했겠지. 서럽게. 서럽게. 그런 날들이 오고 가고 있다. 몇주 전에는 두번째 시집에 관한 질문지를 받았고. 두번째 시집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느냐는 마지막 질문 앞에서. 각각의 시편들을 통해. 무언가를 정교하게 열심히 쓰려고 했고. 그렇게 쓰려고 한 시편과 시편들 속에서. 그 리듬에서 리듬으로 흘러가는 무수한 페이지들 속에서. 무언가 많은 말을 한 것 같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시집을 읽은 뒤에는 그 무엇도 말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그런데.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은 또 아니어서. 역시나 무언가를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어지럽게 소리없는 소리로 흘러가는. 말하지 못하는 그 모든 말들처럼. 읽는 순간. 읽어내려가면서. 문득 문득 떠올랐다 사라지는. 사라졌다 다시 떠오르는. 그 어떤 감정의 결 같은 것들.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장면 같은 것들. 그 무엇으로도 덧입힐 수 없는 오래된 과거와 중첩되는 미지의 목소리 같은 것들. 그렇게 고정되지 않고. 명확히 잡히지 않는 그 무엇. 그렇게 우리의 언어라는 것이 실은 우리의 관념 그대로를 표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이런 대답들은 속으로만 적어내려갔을 뿐. 그렇게 빈칸으로 내버려둔 대답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은 말들과 말할 수 없는 말들 사이에서. 언제나 그렇듯. 후회 아닌 후회를 했고. 체념 아닌 체념을 했고. 그리고 음은 둔중하게 흐른다. 불빛은 어둡게 빛난다. 몇 번의 암전이 있었고. 몇 번의 암흑이 있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는 모두 죽어 있었다. 죽었다고 하기 전에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 전. 어느 해 봄에. 의료 사고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작은 아버지의 감은 두 눈 앞에서. 그 시퍼렇고 차가운 피부 곁에서. 의사는 말했었지. 죽지는 않았지만 살아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말했고. 어떤 말을 하든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가족들의 흔들리는 동공과. 분노와 다를 바 없는 체념 앞에서. 빈사 상태의. 임의의 주검 앞에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어느 결에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떤 것도. 어디에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배어 있고. 폭우는 쏟아졌었지. 폭우는. 그리고. 우리는. 잊는다. 어디든 어디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잊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잊은 그것을 새로운 무언가라고 다시 말하면서. 끊임없이 파내려가야 할 내면의 우물 앞에서. 우물 속에서.

2015.01.26 머리에 꽃을
          

첫 마지막 책상

새해의 첫 책상에서 몇 줄의 짧은 글을 쓰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이 문장들이 조금씩 조금씩만 더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십일월 말에 두 권의 시집이 다 증쇄를 하게 되어 인세를 조금 받게 되었다. 아직 통장으로 들어오지도 않은 돈을 앞당겨 작은 책상을 하나 주문했다.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좋은 책상을 사고 싶었지만. 이 작은 책상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커다란 책상을 하나 더 갖고 있기도 하고. 더 좋은 책상은 새로운 책상이 낡게 되면 그때 또 사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며칠 뒤면 버려질 이 마지막 책상에서 새해의 첫글을 쓰고 있다. 고마웠고 고마웠다고 쓰다듬으면서. 크리스마스에도 내걸지 않은 알록달록 불빛을 목에다 걸어주고는. 그리고. 그러다. 언젠가 읽었던 문장이 생각나. 그저 옮겨 쓰고 싶어서. 몇 줄의 문장을 옮겨 적는다.​

"모든 낱말은-그리고 언어 전체는-의성어적이다" 라고 누군가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장 속에 들어 있을 프로그램이나마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비감각적 유사성의 개념이 모종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즉 여러 언어에서 동일한 어떤 것을 의미하는 낱말들을 찾아내 그 의미된 것을 중심에 두고 주위에 빙 둘러 늘어놓을 경우, 어떻게 종종 서로 하등의 유사성도 보이지 않을 그 낱말들이 모두 그 낱말들의 중심에 놓인 그 의미된 것과 유사성을 보이는지를 연구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종류의 유사성은 여러 상이한 언어에서 똑같은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갖는 관계에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숙고를 전혀 발성된 말에만 제한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글로 씌어진 말을 두고서도 아주 똑같이 그러한 숙고를 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글로 씌어진 말이-많은 경우 어쩌면 발성된 말보다 더 분명하게- 그것의 문자상이 의미된 것에 대해 갖는 관계를 통해 비감각적 유사성의 본질을 밝혀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요컨대 소리로 말한 것과 의미된 것 사이의 결합뿐만 아니라 글로 씌어진 것과 의미된 것 사이의 결합, 그리고 글로 씌어진 것과 소리로 말할 것 사이의 결합도 이루어내는 것이 비감각적 유사성인 것이다.
필적 감정학은 육필로 쓴 글들에서 그 글을 쓴 사람의 무의식이 숨겨넣은 상들을 알아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의 행동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미메시스 능력이 글이 생겨났던 아주 먼 옛날에는 글쓰기 행위에 대해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상정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문자는 언어와 더불어 비감각적 유사성, 비감각적 상응관계들의 서고가 되었다.
그러나 언어와 문자의 이러한 측면은 그것들의 다른 측면, 즉 기호적 측면과 무관하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어의 모든 미메시스적인 것은 흡사 불꽃이 그런 것처럼 일종의 전달자에게서만 현상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 전달자가 기호적인 것이다. 그처럼 단어들 또는 문장들의 의미연관이 전달자이며, 이 전달자에서 비로소 섬광처럼 유사성이 현상화되어 나타난다. 왜냐하면 인간에 의한 유사성의 생산은-인간에 의한 그것의 지각과 마찬가지로-많은 경우, 특히 중요한 경우에 번득이며 지나가버리고 마는 순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유사성은 휙 스쳐 지나간다. 글쓰기와 읽기의 빠른 속도가 언어 영역에서 기호적인 것과 미메시스적인 것의 융해 과정을 상승시키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 이러한 읽기가 가장 오래된 읽기이다. 그것은 모든 언어 이전의 읽기, 동물의 내장, 별들 또는 춤에서 읽기이다. 나중에 룬 문자나 상형문자와 같은 새로운 읽기의 매개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들이 한때 신비적 행의의 토대였던 미메시스적 재능이 문자와 언어로 진입하게 된 단계들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가정해볼 수 있다. 이처럼 언어는 미메시스적 태도의 최고 단계가 되었고 비감각적 유사성의 완벽한 서고, 그 안으로 미메스시적으로 생산하고 파악하는 이전의 능력들이 남김없이 전이되어 들어가서 마법의 힘들을 해체할 정도까지 이르게 된 매체가 되었을 것이다. - 발터 벤야민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몇 줄의 문장만을 옮기려고 했는데.
멈추지를 못하고. 멈추기가 싫어서. 계속 계속 옮겨쓰다 보니.
무언가 쓰려고 했는데. 쓰려고 했던 그 무언가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오직. 책상의  불빛만이. 말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새해의 첫날이다.
중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잊을 수 없는 것조차 잊어버려야 할 나이가 되었다.
잊지 못하는 것마저 잊어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지치고 않고 써나가기를.
너와 내가. 그렇게 우리가.

그러니까.​
해피 뉴 이어. :-)​

2015.01.01 머리에 꽃을
          

나의 동물원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아끼는 동생에게서 받은 그림책을 펼쳐
한색 난색. 색칠 공부를.

2014.12.29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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