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

'2013년 9월의 어느 늦은 오후,
한강 변을 산책하는 동안 전철이 다리 위를 가로질러 갔다.
순간 그전까지 무의식 속에 있어 인지되지 못했던
장면들과 이미지들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와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감정,
일종의 데자뷰가 일어났다.
평소 묻어 두었던 기억과 이미지를
낯선 곳에서 찾아내는 경우처럼
​여행은 미처 기대하지 못한 다양한 발견을 가져다준다.
묻었던 기억을 파내기 위해 만 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을 주파해야 했나 보다.'
- 『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사미르 다마니, 서랍의 날씨.

프랑스 만화가 사미르 다마니가 쓰고 그린 책『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를 읽다가 십 년전 빠리에서 느꼈던 어떤 감정을 새삼 떠올린다.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지내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그 복잡미묘한 감정들. 일상을 떠나 무한한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정신은 어딘가 모르게 뾰족하게 날이 서있고, 한껏 열려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보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한겨울 아침의 칼바람처럼 예민하고 예리하게 머리와 가슴으로 육박해 들어와 깊고 선명한 자국을 남기는. 사미르가 그린 서울의 풍경이 어떤 면에서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국에서 갖게 되는 그런 이방인으로서의 시선과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겠지. 굳이 먼 곳으로 여행가지 않아도 지금 여기 이곳을 다시금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시선의 힘 같은 것. 앞으로 서랍의 날씨에서 나올 소소하지만 어떤 번뜩이는 시선이 느껴지는 책들도 기대된다.

하루 종일 Low Roar를 듣고 있다.
천상의 소리 위에서. 소리 속에서.

잿빛의 주말.

2014.12.27 머리에 꽃을
          

Kohga's Cat 이야옹이_연남동의 아침
가현이의 새집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처럼. 앞으로의 나날도 환하고 따수웁기를. 가현이 만세! :-)


이런저런 날들을 지나 벌써 한해의 끝이다. 내일은 메리 크리스마스. 아무려나 메리메리하게 보내보도록 하고.
몇 개의 양말과 몇 개의 종이를 사러 가야 한다. 여기저기 왔다갔다 정신 없다 보니 올해는 새해 다이어리도, 내년 달력도 하나 구하질 못했다.
이제 거리로 나서자. 동네 문구점에 가서 몇 개의 연필과 몇 장의 종이와 몇 권의 노트를 사고.
매년마다 쓰는 똑같은 표지의 남색 일기장도 하나 사고. 탁상 달력도 하나 얻어오자.  

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춥지만 추운 채로 또 포근하게도 느껴지는 날들이다.
내년은 2015년. 저녁 뉴스를 볼 때마다 암울하기 그지없지만.
아무려나 2015년이라는 숫자는 마음에 쏙 든다. 무언가 좋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그러겠지. 그럴 거야. 라고 생각하니
뭔가 이미 그 좋은 일 속에 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친구들아 그 날은 꼭 오고야 만다 (......)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
만나지 말자 만나지 말자 만나지 말자
모최의 <시월>을 반복반복 듣고 있다.
어떤 은유도 필요 없는 이 슬픔을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모든 노래들을 하나로 묶어. 앨범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싶다.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 본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많은 일들을 잘 견뎌왔다 싶다.
스스로와 다시 한번 악수하고 내년을 그려보도록 하자.
어떤 마음의 어둠으로. 몇 년 동안 많이 쓰지를 못했는데.
이제는 좀더 많이 읽고 좀더 많이 많이 많이 쓰도록 하자.
에니와 내는 산문집 원고도 내년에는 꼭 털도록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
그들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

2014.12.24 머리에 꽃을
          

스마트 3D 만화경

엊저녁엔 뒤늦은 생일 축하 자리를 겸해 동네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마셨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바다가 있는데 얼마만에 찾는 바다인지. 에니와 에니 친구들을 만나 간만에 웃고 놀면서. 우리가 이 좋은 바다를 볼 시간도 없이 이렇게 여유없이 살아도 되냐며 한탄 아닌 한탄을 하고. 그러는 순간에도 음악은 흐르고 물결은 쉼없이 오가고.


형진이가 판매하고 있는 스마트 3D 만화경을 몇 개 사서 에니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모두들 이 만화경을 들여다 볼 때면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친구들 역시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다. 만화경으로 보면 모든 세상이 다 조금은 특별해 보이지만 특히나 심해의 물고기나 드넓은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크고 작은 우주 먼지와 별 무리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지금 여기 이곳을 잠깐 잊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난 후에 지금 여기 이곳을 다시 바라보면 새삼 이 세계가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 든다. 뭐랄까. 그간 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어떤 세계의 한 자락을 다시 한 번 펼쳐보게 되는 기분이랄까. 어른 아이들에게 딱 좋은 선물이 될 듯. 스마트 3D 만화경이 날개 돋힌 듯 팔려서 형진이가 맛있는 걸 많이 사주면 좋겠다. 지난 여름에도 집 팔았다며 기념이라고 형진이가 한턱 쏘기는 했지만. 형진이 사업이 완전 완전 흥해서 더 맛있고 더 비싼 음식을 더 많이 얻어 먹을 수 있는 날이 어서어서 왔으면 좋겠다. :-)


아름다운 시월이 가고 있다. 내일은 아침 일찍 기타를 메고 하동의 평사리 문학관에 낭독회를 하러 간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서 갈 여력이 안 되지만. 몇 번 평사리 문학관 집필실에서 묵었던 인연도 있고. 무엇보다도 '달빛 낭독회'라는 이름이 맘에 들어 어떤 행사인지도 모르고 간다고 했는데. 그날이 벌써 내일이구나. 내일은 시월의 마지막 날. 아름다운 달빛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 달빛이여!


* 형진이 스마트 3D 만화경 판매처 (11월 3일까지는 특별히 10% 세일 합니다!)
스마트3D만화경 130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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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 3D 만화경 네이버 블로그
내 손안에서 펼쳐지는 가상현 (Virtual Reality) 체험
http://m.blog.naver.com/smartkaleido/220127079172


2014.10.30 머리에 꽃을
          

My twin sister who plays the ukulele

지난 여름. 우클렐레를 연주하는 에니 Enny.
녹색의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고.


2014.09.17 머리에 꽃을
          


너의 꿈속에서 내가 꾸었던 꿈을 오늘 내가 다시 꾸었다
이제니

모든 꿈은 에로스와 관계가 있지. 너는 계속 말한다. 나는 그저 듣는다. 나는 보류한다. 나는 판단중지 상태에 놓여 있기로 한다. 너는 계속한다. 프로이트를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지. 꿈을 해석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조차 자신을 숨기기 위해, 언젠가 들킬, 들켜도 상관없는, 어쩌면 들키길 바라는, 그렇게 숨겨진 채로 드러난 문장 대신, 또 다른 내면의 문장을, 또 다른 비밀 일기장을 간직해 본 적이 있는 자라면. 아니, 그런 은밀한 기록은 어쩌면 영원히 간직할 수 없는 거겠지. 쓰자마자 지워질 테니까. 쓰면 쓸수록 더 더 지우고 싶어질 테니까. 분석되는 순간 사라지는 꿈처럼, 끝없이 첨삭되고 수정되는 방식으로 끝끝내 유보되는 너의 문장처럼. 나는 그저 듣는다. 나는 판단 유보 상태에 나를 가두기로 한다. 너는 지속한다. 너는 전진한다. 열에 들뜬 아이가 말을 토하듯.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어. 그 꿈속에서. 그 꿈속의 노래 직전까지도 나는 불안을 멈추지 않아. 나는 어떤 조직의 대표로 뽑히지 않기 위해 두려움에 떨고 있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니까. 내 곁의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인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지. 그들과 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어떤 이유와 목적들을. 모르겠어. 그 구체적인 세목들은. 그리고 일의 순서도 확실하지 않아. 노래가 먼저인지 두려움이 먼저인지. 나는 목양실에 있어. 아니, 목양실에 있었어. 노래를 부르기 직전에. 아니, 그것도 명확하지 않아. 난 그저 목양실이라는 말을 어떤 문장 속에 끼워 넣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그런 느낌을 지닌 낱말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지. 현실의 곤궁함을 잊게 해주는 낱말들을. 아니, 현실의 곤궁함을 더욱더 두드러지게 하는 낱말들을. 감화원이라든가. 김나지움이라든가. 유형지라든가. 금언집이라든가. 하나같이 어떤 종교적인 엄격함과 고결함이 드리워진 단어들이지. 조용히 파열하는 느낌. 아득히 진동하는 느낌. 내밀히 전율하는 느낌. 어떤 청교도적인 단어를 은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내 오래된 욕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향하는 욕망이냐고? 글쎄.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내가 꾼 꿈을 너도 꾸었으니까. 나의 꿈속에서 네가 꾸었던 꿈을 오늘 네가 다시 꾸었으니까. 나는 그저 듣는다. 나는 판단 정지 상태에 놓여 있다. 나무가 나무를 판단하지 않듯이. 구름이 구름을 거역하지 않듯이. 바람이 바람을 나무라지 않듯이.

그러나,
그러는 사이,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나는 점점 떠밀려 내려와,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불안과 공포는 어제의 일이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면 저들은 멈출까.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시간을 멈추고. 무언가 되기를,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을 멈출까. 전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노래하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노래는 퍼져나갔다. 사이 사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로 번지는 그 소리의 빛깔이 흑색인지 백색인지 알 수 없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며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반복해서 헨델의 메시아를 듣던 누군가를 생각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누군가를. 꿈속에서는 결단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누군가를.

오, 아버지.
아데라이데의 아버지.

밤이 밝아오면 낮이 된다. 낮이 어두워지면 밤이 된다. 꿈은 밤으로부터 내려와 다음날 낮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뜬눈으로 잠든 시간이 오래 되었다. 나는 쓴다. 나는 겹쳐서 쓴다. 여백으로 놓인 꿈을 또 다른 꿈 위에. 또 다른 꿈 위에 놓인 어떤 여백을.


2014.09.08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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