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다

어떤 노래는 영혼이란 들리는 그 어떤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쓸쓸함이 깊어지면 뼈마디 같이 단단한 무언가를 보게 되는데. 눈이 멀었던 날들은 이미 지나갔다고. 지난 날들은 이제 없다고. 이제 더 이상 돌아보지 말라고. 이제 더 이상 돌아볼 수도 없다고. 순도 높은 목소리 사이사이로 몇 줄의 개방현이 차례차례로 울릴 때. 뒤가 없는 듯한. 이미 뒤가 되어버린 듯한. 어떤 나즈막한 목소리 사이사이로. 어떤 풍경이. 어떤 얼굴이. 어떤 기억이. 어떤 울음이. 점점이 들리는 것인데. 귀신에 들리듯. 바람에 날리듯.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너는 지금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아니. 너는 지금 사라져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있다고.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 순간에서 순간으로 사라지는 일이라고.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 그 사이와 사이. 다시 그 사이와 사이 사이의 온전한 있음이라고. 오직 그렇게 사라져가는 이 순간만이 아름답다고.


2014.06.13 머리에 꽃을
          

착한 개

너의 곁에는
착한 개가 한 마리 있어
착한 개야 하고 부르면
착한 개는 돌아본다

2014.05.09 머리에 꽃을
          

책의 이웃

화창한 토요일이다.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잎이 없고. 거리의 고양이들은 점점 줄어든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올 때면 아파트 화단 곳곳에 놓인 밥그릇 위로 사이좋게 머리를 숙이고서 열심히 무언가를 먹고 있는 고양이들을 본다. 뽀삐가 남기고 간 닭고기 사료 캔들을 아파트 화단 여기저기에 부어주고부터는 아파트 고양이들과도 눈인사 정도는 나누게 되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는다. 내가 눈을 껌뻑이면 저쪽에서도 눈을 껌뻑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껌뻑 껌뻑 껌뻑 껌뻑. 몇 번 껌뻑 껌뻑 인사를 나눈 후 일어나. 나는 나의 길을. 고양이는 고양이의 길을 간다. 고양이의 길이라니. 고양이의 길은 멋지겠지. 그 끝까지 따라가 본다면. 고양이의 길은. 고양이의 길도. 슬프고 아름답겠지.  

며칠 전에야 거제도에 예술영화전용 극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주 상영작은 <하루>,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로렌스 애니웨이>, <셜리에 관한 모든 것>,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다. 일단 뭔가를 먹고. 세수를 한 뒤에 옷을 입고 <로렌스 애니웨이>를 보러 갈 생각이다. 가야지 생각하고는 있지만. 갈 지 안 갈지는 잘 모르겠다. 같은 거제도 안이어도 극장에 가려면 차를 타고 이십분 정도는 가야 한다. 이십 분 정도의 이동시간이면 근처라고도 할 수 있는 거리지만. 이젠 무언가를 보러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는다. 십대 시절까지만 해도 영화나 공연을 보러 부산으로 통영으로 배를 타고 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몇 시간이나 설레이며 갔었는데. 이젠 오래 멀리 몸을 움직여 어딘가로 갈 만큼 딱히 무언가가 궁금하지 않다. 그저 걸어갈 수 있는 정도의 거리가 딱 좋다. 늙은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작년 오월 이사한 이후로 아직까지도 책장을 다 정리하지 못했다. 문득 생각나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생겨도 어디에 있는지 몰라 읽지 못하고 있다. 정리 못한 채로 새로운 책들만 무럭무럭 쌓여가고 있다. 밥을 먹고 나서 생각이 바뀌면 극장 대신에 책장을 정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밤을 새겠지. 시작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지만 막상 시작하게 되면 재미날 거야. 이런 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즐거운 일이니까. 조용하고. 반복적이고. 끊임이 없으니까. 책들의 등짝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내게 있어 책은. 자신에게 가장 좋고 소중한 책만 몇 권 남기고 다 정리를 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책들은 자꾸 늘어만 가네요. 결핍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은.

화창한 날이다. 누군가와 집 근처 가까운 바닷가에 가기에도 좋은 날이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의자에 앉아 오래오래 말 없이 앉아 있어도 좋은. 그러다 물수제비를 만들어도 좋겠지. 조용히 흐르는 물 위를. 물의 표면을 스치듯이 아주 예리한 각도로.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온 힘을 다해.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돌이 아주 멀리 멀리로 사라질 때까지.
둥글게 그려진 동심원들이 물 위에서 하나 둘 사라질 때까지.
무언가를 보듯 아무것도 보지 않는 두 눈으로.
저 너머 너머를 오래오래 바라보는 두 사람을.

그런 날이다.


2014.01.04 머리에 꽃을
          

대나무 서표

새해가 시작되었다. 며칠 전 가볍게 정리한 책상은 다시 이런 저런 책과 종이들로 무거워졌다. 새해 첫날. 대나무로 만든 서표를 선물로 받았다. 미국에 갔다 온 케이시가 자신의 엄마가 전해주라고 했다며 몇 겹으로 둘둘 말린 희고 얇은 화지 속에서 대나무 조각 하나를 꺼내준다. 케이시는 무심히. 그러나 귀중한 무언가라는 듯 분명한 발음으로. 뱀부-. 라고 천천히 말하며 서표를 건네준다. 북 마크 윗쪽에 새겨진 불에 그을린 문양은 케이시의 엄마가 살고 있는 섬마을 Cape Cod의 모양을 본따 만든 것이다. 케이시의 엄마는 지금 많이 아프다. 삶의 끝에서 삶의 끝까지. 간신히 간신히 밀고 나가고 있다. 그 삶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고통 없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조금만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들의 얼굴들. 이미 죽은 나의 친구들. 병실에 누워 있던 그들의 마지막 얼굴이 생각난다. 앙상한 팔과 다리. 오랜 고통에 시달려 일그러진 표정. 살고 싶은 것 만큼이나 어서어서 죽기를 바라던.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의미에서. 누군가는 초탈했으며 누군가는 퇴행했다. 그때 초탈과 퇴행은 그리 다르지 않은 말인지도. 아무도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음 앞에서. 어쩔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사람들은 눈빛이 바뀐다. 숨이 바뀐다. 말이 바뀐다. 가끔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시베리아 병실 시절의 사진들을 보는데. 그때의 내 얼굴은 내가 아니었다. 자포자기와는 조금 다른. 의연함과도 조금 다른. 체념과도 조금 다른. 아무튼 뭐라 말할 수 없는 얼굴이었는데. 밤낮으로 이어지는 통증 앞에 굴복한 얼굴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러나 무언가 어딘가 멀리 멀리로 가 있는 얼굴로. 그렇게 어딘가 저 너머로 가 있는 그런 얼굴로.


아무려나 새해의 시작이다.  

떡국을 먹었고 딸기를 먹었고 인스턴트 팥죽과 호박죽을 먹었다. 인스턴트는 인스턴트답지 않게 맛있었다. 무언가 아주 달고 단 것을 먹고 싶은 추운 저녁이다. 손가락이 시리다. 냉장고에는 건조 쌀국수와 딸기와 사과와 고구마와 참치 캔과 달걀이 있다. 어떤 허기. 어떤 허무. 어떤 허구. 어떤 허공. 뭘 만들어 먹을까. 뭘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촛불과 대나무 서표를 보았고.
타오르는. 일렁이는. 흔들리는. 그을린.
마치 유품과도 같은 흑백의 빛으로.

올해의 럭키 사인은 아주 멀리서부터 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 마흔세살이 되었다.  

2014.01.01 머리에 꽃을
          

피로와 파도와 콘서트

지난 마모MAMO 공연은, 역시나 쓸쓸하게 끝났다. 추운 연말에 조금이나마 훈훈한 공연이 되었으면 했지만. 역시나 더할 수 없이 쓸쓸하고도 쓸쓸하여. 하지만 그 쓸쓸함이 참 좋았다. 강정의 무대가 되었을 때에야 핀 조명 밖으로 나와 객석을 볼 수 있었는데. 자리에 온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푸욱 숙이고 자신들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이 몹시도 쓸쓸해서 뭔가 마음으로 내내 보아왔던 어떤 오래된 헛것을 보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었지만. 헛것은 아름다운 것. 언제나 그렇듯 노래를 부르는 사이 사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했는데. 그건 내 속의 어쩔 수 없는 오래되고 깊은 허무여서. 아무려나. 관객은 모두 38명. 동료 작가들 외에 티켓을 사서 온 분들은 25명 정도. 몇 되진 않았지만 티켓을 사서 와준 분들이 너무 고마워 손이라도 잡고 싶었는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모두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쓸쓸함에 마음이 회색으로 젖어 공연 중에 음원도 하나 녹음을 못하고. 동인들이며 작가 친구들이 자리를 채워주지 않았다면 더 쓸쓸하고 허전할 뻔 했었는데. 아니. 그들이 왔기 때문에 그렇게 더 쓸쓸해졌었는지도. 어둠 속에서 본 그들의 표정이 하나하나 생각난다. 고맙고 슬펐고. 슬펐고 고마웠다.


춥다. 한해의 끝이다. 낮에는 외투를 몇 겹이나 껴입고 나가 새해 맞이 준비로 이런저런 것들을 샀다. 새 일기장을 사고, 풀과 스카치 테이프를 사고, 얼마 전 잃어버린 것과 똑같은 나무로 된 샤프를 한 자루 사고, 베이지, 그레이, 네이비, 두툼한 양말을 세 켤레 사고, 커다란 종이를 세 장 샀다. 엷은 한지인데 각각 흰꽃과 회색꽃과 남색꽃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써서 보낼 수도 있겠지. 나가는 길에 동생집에 들러 생선찜을 전해 주라고 엄마가 커다란 솥을 하나 쥐어주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에 살짝 정신이 나가 어딘가에다 그대로 내버려두고 와서. 집으로 돌아와 외투를 벗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잘 갖다 줬냐는 엄마의 소리를 듣고서야, 그러엄, 잘 갖다 줬지, 하며 부리나케 외투를 다시 입고 나가 낮에 돌아다녔던 문구점이며 화방이며 우체국이며 일일이 찾아가 확인을 하고서야 화방의 종이 코너 맨 구석에 얌전히 놓여 있는 노란 솥을 발견하고. 그 사이 생선찜은 슬프게 식어 있었지. 뚜껑을 열어보니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어. 울긴 왜 우니. 내가 왔잖니.  

솥의 손잡이를 조심스레 들고 동생집으로 가는 길에 옷가게를 하는 친구가 가게 앞에 서 있다 나를 보고는, "제니야, 왜 이렇게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냐 진짜? 그 솥은 또 뭐여?! 폼 안 나게." 라며 내 옷깃을 여며주었고. 나는 왜 그런지 문득 인생살이가 몹시도 고단하게 느껴져서,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 없는 대꾸를 하고는 헤어졌다. 솥은 여전히 울고 있었지. 그래. 인생이 뭐 다 그런 거 아니겠니. 아닌 게 아닌 게 아니지 않겠니.

내년의 바람은, 될 수 있으면 마감을 어기지 않는 것. 모든 마감을 10일 전으로 셋팅하겠다는 것. 그렇다면 당장의 마감은 내일인 건가. 아직 한 줄도 안 썼는데. 지켜야지. 지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젠 몸 상태도 좋아졌고. 앞으론 정말 정말 많이 많이 써야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굳게 다짐을 하고.

내년은 백말띠의 해라는데. 백말띠라면 혹시 흰 유니콘?
환상적인 유니콘의 해가 되는 건가. 오오, 멋있어.


내년에는 사랑하는 친구들의 책이 줄줄이 나오고. 많이 설레는 날들이 되겠구나.
내 두 번째 시집도 나오고. 산문집도 어여 원고를 넘겨야 할 텐데. 2010년에 계약한 책을 여지껏 넘기지 못하고 있다니. 대체. 당최.

아무려나. 모두 모두 지금까지 잘들 살아냈군요.
무언가가 사라져도, 사랑하는 것들이 죽어도,
우리는 그것들 없이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 또 새로운 한해를 잘 건너가 봅시다.

모두 모두 해피 뉴 이어.

사랑하고 사랑합시다.
더 많이. 더 더 많이.

:-)

2013.12.31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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