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와 앵무
이제니

가지가 있다
가지가 하나 있다

하나의 가지 뒤에 또 다른 가지 하나가
또 다른 가지 뒤에는 앵무가 하나 온다

앵무는 날아온다 날아와서 앉는다
가지 위에 가지 위에 가지런히 가지 위에

가지 위에 앵무 하나
가지 위에 앵무 둘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나는 이곳에
가지 위에 가지런히 두 발을 얹고서

추위도 더위도 얼음도 눈물도
이 가지 위에서는 모두 똑같다

가지 위에 빨강 하나
가지 위에 빨강 둘

마중인지 배웅인지 모를 얼굴로
앵무는 가지를 가지를 흔든다

나는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무 뜻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지 위에 기억 하나
가지 위에 기억 둘

누군가 손가락을 들어 나무를 가리킨다
무수한 가지들 위에는 무수한 앵무들이

리토피아 2011년 겨울호

2011.10.16 머리에 꽃을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이제니

너는 왜 매번 지우개가 없는 거냐. 책상에 두었는데요. 매번 책상에 두었다면서 왜 매번 지우개가 없는 거냐. 글쎄요. 이 책상이 네 책상이 맞긴 맞는 거냐. 그럴 걸요. 아마도. 언제부터 네 책상이었느냐. 기억나지 않는데요. 어서 지우개를 찾아오너라. 발 없는 지우개를 가져오너라. 오늘 장기자랑은 어땠느냐. 그저 그랬어요. (또 놀림을 받았구나. 놀림을 받았어. 놀림을 받아서 또 울었구나. 울었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너는 왜 최대공약수를 구해야 할 때 최소공배수를 구하고 있는 거냐. 문제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아라. 사탕 18개와 초콜릿 24개를 최대한 많은 접시에 남김없이 똑같이 나누어 담는다고 했잖니. 최대한 많이. 최대한 많이 나누어. 최대한 많이 나누어 담는다고 했잖니. 너는 나누어 담는 것이 싫은 거냐. 아니요. 그럼 너는 사탕이 싫은 거냐. 아니요. 초콜릿은 좋아하잖니. 네. 좋아해요. 이모도 좋아한단다. 초콜릿보다는 초콜렛. 언제나 초콜렛이 좋았단다. 언제나. 언제나. 그런데 너 언제까지 저 인공부화기의 불빛을 켜둘 셈이냐. 저 부화기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전류의 소음이 극심한 두통을 일으키는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요. 너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무언가 끓어 넘치고 있는 것 같구나. 어디선가. 무언가가. 한없이 끓어 넘치고 있는 것 같구나. 한없이. 무한히. 신음하고 있는 것 같구나.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저것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저 알 속에서. 저 어둠 속에서. (어둠 속에서 얼굴 없이 죽어가는 저 깃털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몰라요. 몰라요.) 그렇다면 이제 몇 마리 남은 거냐. 그것들이 어미 없이 알을 깨고 나온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미 없는 발들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냔 말이다. 어미 없는 발이라는 말이 싫다면 어미 없는 날개라는 말은 어떠냐. 어미 없는 새는 어미 없는 새로 살아가게 될 거다. 앞으로. 영원히. 어미 없는 새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그들은 이제 어미 없는 새가 된 게다. 아니야. 야단치는 게 아니야.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피곤하구나. 눈이 빨개요. 그래. 충혈 됐어. 충혈. 충혈이라니. 출혈이라면 또 모를까. 이모는 좀 누워야겠구나. 이모는 누워 있을 테니 너는 계속 문제를 풀거라. 저 메추리들은 저 뜨겁고 투명한 유리관 속에서. 너는 언제까지 저들을 저 속에 가둬둘 셈이냐. 몰라요. 몰라요. 언젠가는 저 인공부화기의 불빛도 꺼지게 될 거다. 언젠가는 너도 저들을 잊게 될 거다. 사물의 이름을 잊는 방식으로 너도 저들을 잊게 될 거다. 그런 뒤 너는 너만의 새를 머릿속에 키우게 될 거다. 네 머릿속에서 너의 메추리가 날개를 펼칠 때 너는 그제야 그들 또한 너를 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게다. 네가 저들을 잊었듯이 저들 또한 너를 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너와 메추리는 다시 처음처럼 온전히 만나게 될 거다. 이모. 왜 자꾸 혼잣말을 하세요. 이모는 혼잣말이 무엇인지 모른단다. 이모는 그저 숨을 쉬고 있을 뿐이란다. 한 번의 들숨. 한 번의 날숨. 들숨이 멈추는 순간. 날숨이 멈추는 순간. 그 순간순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너는 아느냐. 몰라요. 몰라요. 이모도 모른단다. 그런데 호흡법이라면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긴장하지 않기 위해,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너는 하루에도 몇 백번 심호흡을 연습하지 않느냐. 그러고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낯빛이 백지빛으로 변하며 모든 일을 다 망치지 않느냐.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피곤하구나. 고모를 불러와야 할 지도 모르겠구나. 이모는 힘이 없구나. 말할 힘도, 서 있을 힘도, 앉을 힘도, 누울 힘도, 쓸 힘도 없구나. 그래서 이모는 노래를 부른단다. (이모의 노래가 들리느냐.) (아니요. 아니요.) 아니, 너 왜 또 최소공배수를 구하고 있는 거냐. 최대공약수라고 하지 않았느냐. 통분을 할 때만 최소공배수라고 하지 않았느냐. 가로 16cm, 세로 6cm인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이에서 가장 큰 정사각형을 잘라내고, 남은 종이에서 가장 큰 정사각형을 잘라내려고 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종이가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반복할 때, 마지막에 잘라내는 정사각형의 한 변은 몇 cm인지 알아보시오. 알아보시오, 라고 했잖니. 자, 알아보도록 하자. 가장 큰 정사각형이라고 했잖니. 가장 큰. 잘라내라고 했지. 잘라내는 거야. 반복해서. 반복해서. 이 직사각형을 잘라내는 거야.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잘라내고 남은 직사각형을 또 잘라내는 거야.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자꾸 자꾸. 언제까지 잘라내야 하느냐고. 가장 큰 정사각형이 남을 때까지다. 가장 큰 정사각형.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 정말 어려운 일이야. 이모도 시도해봤지만 실패 했단다. 이모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이 돼버렸지. 그래서 인생이 이토록 피곤하단다. 그래. 더 잘라내야지. 가장 큰 정사각형. 가장 큰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이제 잘라낼 종이가 없어요. 아니야. 더 잘 살펴보아라. 아직도 잘라낼 정사각형이 있을 거야. 가장 큰 정사각형이. 잘라낼 종이가 없을 때조차도 잘라낼 가장 큰 정사각형이 있는 법이지. 이모, 머리가 아파요. 이모도 그렇단다. 언제나 머리가 아프지. 이모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피곤하구나. (이모는 조금 더 마시고 그만 죽어버리고 싶구나. 이모는 조금 더 마시고 그만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구나.) 지우개가 떨어졌잖니. 바닥에. 여기 또 지우개가 있구나. 여기에도. 여기에도. 책상에 둔 지우개가 바닥에 있구나. 바닥에. 지우개가 여기. 지우개가 여기. 지우개가 여기. 바닥에 있구나.

ㅡ 3월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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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머리에 꽃을
          
나선의 감각
ㅡ 물의 호흡을 향해
이제니

보이지 않는 당신을 본다고 하자 희고 마른 뼈의 적막을 듣는다고 하자 심해의 어원을 찾아 깊이 깊이 떠돈다고 하자 물결의 적막을 적막의 불결이라 부른다고 하자

나아가는 동시에 멈추는 나뭇가지

번역투의 문장만이 우리가 가지는 모든 것이라고 하자 뼈로 만든 악기가 울고 있구나 물결 속에서 물결을 향해 물결이 되어 물결로써 물의 호흡을 항해한다고 하자 물의 호흡을 향해 간다고 하자 회색이라는 말을 똑같은 어조로 기록한다고 하자 호흡이 은유의 뼈를 만지다 사라진다고 하자 그곳이라는 말에 모든 동공이 열린다고 하자 노래를 숨기는 너의 입술이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 그렇다

빛을 보는 내가 있다고 하자 어둠에 둘러싸여 어둠으로 말하는 내가 있다고 하자 규칙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있다라고 하자 간신히 천천히 낮게 드리우는 그림자가 있다라고 하자 그림자를 향해 호흡하는 내가 있다고 하자 그 곁에 당신이 있다라고 하자 회오리치는 마음이 있다라고 하자 회오리치는 눈길이 있다라고 하자 회오리치는 회오리가 있다라고 하자 후회하지 않는 물결이 있다라고 하자 돌아오지 않으면서 돌아오는 상처가 있다라고 하자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말하지 않는 당신이 있다라고 하자 닿을 수 없음으로 닿는 물결이 있다라고 하자 속삭임을 불러내는 속삭임이 있다라고 하자 물결의 표면에서 어제의 색깔을 읽는 당신이 있다라고 하자 물결의 무늬를 소리로만 인식하는 당신이 있다라고 하자

하나의 호흡 속에 있는 네 개의 동공

하늘이 펼쳐지는 방식으로 자라나는 바다가 있다라고 하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따라가는 내가 있다라고 하자 침묵이라는 말이 침묵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자 동공 속의 동공 같은 마음이 흔들린다고 하자 호흡 쪽으로 다가가는 손길이 있다고 하자 유연하고도 연약한 지느러미가 있다고 하자 끝없이 차오르는 물방울이 있다고 하자 거대함이라는 말 대신 하나의 호흡 속에 잠겨 있는 불길을 만진다고 하자 멀리 있어 아름다운 빛을 바라본다고 하자

이제는 말하지 않는 겨울
이제는 말하지 않는 깊이

머나먼 소실점의 거리에서 우리의 깊은 숨이 서로를 불러내고 있다고 하자 다가가는 만큼 낭비하는 물결이 있다고 하자 낭비된 만큼 멸절된 시간이 있다라고 하자 돌이킬 수 없는 간절함이 있다라고 하자

그렇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무엇과 왜와 어떻게라는 말 대신 그저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하자 그저 그렇게 지금 여기에 놓여 있다라고 하자 다만 호흡하고 있다고 하자 다만 있다고 하자 다만 멀리서 가깝게 있다라고 하자 물결을 따라 흐르는 소용돌이를 본다고 하자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문장이 있다라고 하자 전해지지 않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끝없이 이어지는 호흡이 있다라고 하자 또다른 호흡이 또다른 호흡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하자 순간의 폭발이 있다라고 하자 소리가 있다라고 하자 호흡이 있다라고 하자

그렇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하나의 순간에 하나의 무늬를 새겨넣는 아름다움이 있다라고 하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고 하자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 당신의 뼈로 만든 이름 모를 악기가 울고 있다라고 하자 두려움이라는 말을 삭제한다고 하자 타오르는 불꽃을 빈혈의 얼굴이라는 말로 대신한다고 하자 삭제된 문장 위로 삭제된 또 다른 문장이 내려앉는다고 하자 기억의 물결을 최초의 지느러미라고 하자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

깊이에 대한 검은색을 두렵지 않은 남빛이라고 하자 남빛의 날빛의 문장을 당신의 손에 쥐어주고 있다라고 하자 바람을 발음하는 발원이 있다라고 하자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자 마음이 아프지 않다라고 하자 가슴이 뛴다라고 하자 가슴이 뛰지 않는다라고 하자 끝없이 물결치는 원형이 있다라고 하자 끝없이 흘러나오는 훈기가 있다라고 하자 소용돌이치며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하자 다시 보이지 않는 당신을 본다고 하자

웹진 뿔 2011년 1월

2011.02.08 머리에 꽃을

          
나선의 감각
ㅡ 잿빛에서 잿빛까지
이제니

누군가 언덕 위에서 소리 없는 구슬을 던지고 있었다. 구슬은 낙하한다. 구슬은 추락을 용인한다. 구슬은 울지 않는 날들 속에서 태어난다. 울음의 입을 막고 있는 둥글고 불투명한. 그는 끊임없이 말한다. 그는 끊임없이 입을 다문다. 하나의 죽음을 갖기 위해 사십 년의 생이 필요했다. 이 생을 보다 정성껏 망치기 위해 나는 몇 마리의 개를 기르고 몇 개의 무덤을 간직하였으며 몇 개의 털뭉치를 버렸다.

서서히 눈 멀어가는 개의 고독
두려움이 모종의 소리로 흩어질 때

그는 어둠을 본다. 어떤 어둠. 소리 없는 구슬 속에 도사린 어둠. 구슬은 수천수만으로 분열되어 빛의 분수처럼 터져나가며 다시 최초의 어둠으로 태어난다. 그는 잿빛, 잿빛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죽기 직전의 감정으로 잿빛이라는 말을 고안해낸다.

잿빛에서 잿빛까지
잿빛을 향해 나아가는 잿빛으로

희망의 여지없음을 생의 헌사로 받아들이기로 한 불구자의 내면을 생각하는 밤. 되찾을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희망. 그는 견딘다. 그는 기쁘게 견딘다. 습도가 낮은 방. 모든 물체는 정전기를 일으킬 수 있다. 잃어버린 신체의 일부라 할지라도. 이 빈혈성의 불꽃은 더없이 희미하다. 더없이 희미한 채로 온전히 환하다. 잿빛에서 잿빛까지. 잿빛을 향해 나아가는.

구슬은 흐른다. 어김없이, 어쩌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마치 쏟아지듯이, 누군가의 비밀스런 적의처럼,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처럼. 구슬은 흐른다. 그는 몇 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것이 그 자신의 죽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미 죽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그는 지난 사십 년간 애완해왔던 것들의 목록을 수첩에 적는다. 그 자신도 알아볼 수 없는 속도로, 아주 빠른 속도로, 그것들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잊어버리기 위해서, 그는 기록에 골몰한다. 그가 낭비했던 무수한 종이들. 종이 위의 흉터를, 기억의 흉터를 지워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는 또다시 종이를 낭비한다. 구슬은 흐른다. 소리 없는 소리 속에서 태어나는, 둥글고 불투명한. 잿빛에서 잿빛까지. 잿빛으로 나아가는 잿빛으로.

개의 동공은 점점 굳어간다
식어가는 빛, 하얗고 불투명한
안개와 안개 사이, 불빛과 불빛 사이

두 개의 동공은 서서히 멀어져간다.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간신히 의지한 채로. 가장 가까운 동시에 가장 멀리 있는 두 개의 구멍.

잿빛에서 잿빛까지
잿빛을 향해 나아가는 잿빛으로

어둠의 밀도가 깊어진다. 그는 드디어 두려움을 보기 시작한다. 최초의 장면처럼 어둠이 드러난다. 그는 그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 자신의 유령을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도려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맹렬하게 짖어댄다. 두려움으로 두려움을 짖어댄다. 어둠이, 더 깊은 어둠이, 잿빛이, 더 깊은 잿빛이.

불투명하고 둥근 빛 속에 간신히 은거하는 몸. 그는 그저 겨우 몇 개의 구슬을 반복적으로 던질 수 있을 뿐인데, 그것들은 폭죽처럼 터지며 빛의 속도로 어둠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인데, 잿빛에서 잿빛까지, 잿빛을 향해 나아가는 잿빛으로, 무언가 전도되고 있는, 슬픈 동시에 아름다운, 손쓸 도리 없는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무언가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다는 자각의 순간에, 그는 그저 몇 개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내뱉으며, 누군가에게 위안의 말을 던지는 것으로 자신을 위안하는 것인데, 그 순간, 아름답고도 막막한 거리가 생겨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찰나 속에서, 아롱진 새떼와 마지막 나무 사이에서, 눈부신 잿빛 속에 놓여 있는 오래된 개의 고독을, 불투명하고 둥근 구슬을 바라보는 것인데,

잿빛에서 잿빛까지
잿빛을 향해 나아가는 잿빛으로

누군가 언덕 위에서 소리 없는 구슬을 던지고 있었다. 구슬은 불투명한 소리를 내며 구르는 동시에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무덤 곁으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두려움 없는 매복의 자세로, 소용돌이치며 둥글게 흔들리는 동공 속으로, 잿빛 속으로, 잿빛을 향해, 울면서, 속으로 울면서, 뛰어들고 있었다.

현대문학 2011년 1월호

2011.01.07 머리에 꽃을



          

묘지 산책자의 편지

죽은 자의 집
몇 년 전 겨울, 몽파르나스의 에드거 키네 대로를 천천히 걸어가던 순간을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안개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잿빛 하늘. 바닥을 뒹구는 낙엽들. 하늘 끝까지 뻗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축축함. 어떤 비애. 텅 빈 채로 가득한 충만함. 망설임 속의 설레임 같은 것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눈이 많았고 비가 많았고 바람이 많았다. 바람이 많은 건 내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걸을 때마다 팔 다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열망과 절망의 외피를 두른 작고 검은 구멍들이 몸 여기저기에서 자라나던 시절이었다. 구멍은 또 다른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들은 서로의 구멍을 메우듯 더 큰 구멍으로 번져나갔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절망이 내 앞에 놓인 종이들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썼거나 쓰고 있거나 쓰려고 했던 문장들이 점점 정교함을 잃어갔다.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아주 구체적인 한 모서리에 내 자신의 손끝이 가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게 할 그 무엇.

에드거 키네 대로는 텅 비어 있었다. 나는 묘지를 향해 걷고 걸었다. 얼굴 없는 얼굴들을 향해. 목소리 없는 목소리들을 향해. 내 주머니 속에는 몇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종이에 보이지 않는 펜으로 쓴 몇 줄의 문장들. 언제나 내가 말 걸고 싶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지독히도 말이 없었다. 완전한 침묵만이 한 존재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듯이 그들은 심연 그 자체로 놓여 있었다. 그들에게라면 무언가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내게 말 건네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세계의 끝 푸른 잔디 위를 한나절 정도 산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파리 시내에 있는 묘지들 중에서 페르 라셰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묘지이다. 묘지 특유의 음산함으로 가득한 페르 라셰즈나 몽마르트르 묘지에 비해 몽파르나스는 어딘가 산책하기 좋은 공원과도 같은 산뜻하고 쾌적한 느낌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묘석. 굳건히 열린 책처럼 네모 반듯하게 세워진 묘석 위에 나란히 적힌, 독립적이고도 다정한 그 두 개의 이름을 보는 순간부터 나는 한겨울의 그 묘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이름을 시작으로 종으로 횡으로 압도하듯 펼쳐지는 묘석과 묘석들. 세월의 힘에 의해 묘석의 귀퉁이들은 조금씩 마모되고 빛바래고 있었지만 바로 그 낡아가는 힘으로, 그 조용하고도 단호한 침묵의 방식으로, 묘석의 주인들은 그 자신의 전설을 증식시키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묘석과 묘석을 쓰다듬듯 눈으로 훑으며 한발 한발 묘지 속으로 걸어나가는데, 어디선가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풀 볼륨으로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어느 날의 내 장례식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나직하게 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1982년 굴드의 장례식장에서 굴드가 죽기 전해에 레코딩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 부분이 하나의 유령처럼 교회당 가득 울려퍼졌을 때 그 자리에 모인 수천명의 조문객들이 얼어붙은 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을 울게 한 것은 굴드의 피아노 연주가 아니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서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굴드의 그 무의식적인 허밍, 완벽한 몰입 속에서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죽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한 삶의 육성 때문이었다. 하나의 몸이 지상에서 사라져 한줌의 먼지가 되고 나서도 영원히 그 육체의 육성이 그리워지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묘지 상세도에 적힌 그들의 이름은 새삼 그들의 거대하고도 지난한 삶을 환기시켜 주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만 레이, 모파상, 사뮈엘 베케드, 외젠 이오네스코, 트리스탄 차라, 자드킨, 세르주 갱스부르, 브랑쿠시, 샤를 보들레를...... 나는 그 무수한 이름들 중에 나의 두 발이 오래도록 머물게 될 무덤이 어디일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 문학의 출발점을 분명히 되새겨줄 지표를 찾게 되리라 생각하면서. 그들의 문장과 음악과 그림을 밤이 새도록 읽어내려가던 어린 시절.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흔들림을 고백할 때조차도 정직하고 단호했다. 그 목소리들은 나보다도 더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나의 친족이었다. 이 생을 떠날 때 그들은 저마다의 흰빛을 잘 따라갔을까. 이 생에 남겨놓은 것들을 이제는 고통 없이 바라보고 있을까.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
'가엾은 나의 영혼이여! 가방을 꾸려 토르네오로 떠나자. 그보다 더 멀리로 가자. 발틱해의 맨 끝으로 가자. 아니, 가능하다면, 삶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북극에 가서 자리를 잡자. 그곳에서는 태양이 땅을 겨우 비스듬히만 스치고 낮과 밤의 느린 교대가 변화를 제거시키고 단조로움을, 이 죽음의 반쪽 부분을 배가시킨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북극광이 우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때때로 마치 지옥의 인공의 불의 반사같은, 그들의 장밋빛 빛다발을 보내는 동안, 긴 어둠 속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나의 영혼은 폭발한다. 영혼은 현명하게 나에게 외치는 것이다! 어느 곳이라도 좋소!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 보들레르,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파리의 우울』중에서

보들레르는 묘지의 서쪽 끝에서 은거라도 하듯 조용히 누워 있었다. 십대 시절 로트레아몽과 함께 열렬히 사랑했던 보들레르. 작은 섬마을의 하나밖에 없는 서점에서 보들레르의『파리의 우울』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저녁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보들레르는『파리의 우울』을 일컬어 보다 많은 자유와 디테일, 영혼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을 얻은 '악의 꽃'이라고 말하며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상념의 물결침과 의식의 경련에 걸맞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도 동시에 거친 시적 산문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페이지 페이지마다에서 흘러나오던 그 이국적이고도 낯선 활기에 매혹되었던 날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의 열망, 권태와 심연의 창공을 열어보이는 데카당한 이미지에 사로잡혀 밤잠을 잊은 채 새벽이 다 되도록 텅 빈 골목골목을 홀로 배회하곤 했던 열 여섯살 무렵의 날들. 어쩌면 그것은 내 최초의 문학적 열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도 파리를 사랑했고 누구보다도 파리를 증오했던 시인 보들레르. 그의 의붓 아버지인 자크 오픽 대령의 이름과 함께 묻혀 있는 보들레르의 묘석은 그가 써내려갔던 광기와 도취의 문장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담하고 예쁘기까지 하다.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찾는 이가 많은 묘석 중의 하나여서인지 도착했던 그 날에도 묘석 위에는 무수한 꽃들과 작은 화분들, 지하철 티켓과 저마다의 모국어로 써내려간 편지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타올랐을 것 같은 식어버린 양초들이 놓여 있었다. 머나먼 나라의 여행자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한발 떨어진 곳에서 그 무엇도 보지 않는 눈으로 그의 묘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들에게는 도리어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 그 무덤가에서 어김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나는 왠지 수줍어하며 한동안이나 머뭇머뭇 보들레르의 묘지 주변만을 맴돌기만 했다.

자신의 필생의 역작인『악의 꽃』의 참패로 인해 실의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중 저주라도 퍼붓듯 파리를 떠나 브뤼셀로 옮겨간 보들레르. 그가 떠난 뒤 파리에서는 말라르메와 베를렌 같이 보들레르를 숭배하는 젊은 열광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는 자신들의 스승이 되어줄 것을 바라는 젊은 세대들에게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을 줄 모르는 자들이라는 경멸을 보내며 파리로 돌아가지 않는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브뤼셀에서도 일정한 거처 없이 막대한 빚에 쫓기며 살아가던 보들레르는 매번 빚을 질 때마다 그러했듯 어머니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다시 한번 어머니의 집이 있는 옹플뢰르로 떠난다. 그 짧은 체류를 마치고 다시 브뤼셀로 돌아가기 전 그는 동료 문인이었던 생트-뵈브에게 이런 메모를 남긴다.  

저는 지옥을 향해 떠납니다......

뇌출혈을 일으켜 실어증의 나날을 보내다 죽기 이년 전쯤의 메모다.
묘석 위에 놓인 사진 속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어떤 광적인 광휘에 사로잡혀 있었다. 죽어서도 그는 여전히 댄디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말쑥하고 근사하게 잘 차려입는 외적인 취향의 양태를 넘어, 개인적인 자아도취의 수준을 넘어, 끝간 데 없이 펼쳐져 있는 세계와 죽음의 심연 저 너머를 바라보려 했던 자의 태도를 그는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 넓은 묘지의 어느 누구보다도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보들레르야말로 내 주머니 속 편지의 의심 없는 수신인이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후회합니까. 나는 보들레르에게 어떤 질문을 했다. 한참 후 보들레르는 나의 물음 그대로를 대답으로 되돌려주었다. 우리는 한동안이나 서로에게 같은 문장으로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다. 비가 그치고 있었고 바람 속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어떤 희미한 길 하나가 열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안녕, 이오네스코
'내게는 슬픔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 있으나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란 내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을 응시하는 것. 아주, 아주 주의 깊게 바라보면 갑자기 이 세상 모두가 꼭 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러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해지는 것이다.'
- 외젠 이오네스코, 『외로운 남자』중에서  

보들레르와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동쪽으로 걸어나와 몽파르나스 묘지의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다보면 이오네스코의 묘석을 만나게 된다. 생몰 연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최근의 죽음이어서인지 이제 막 만들어놓은 무대 소품같이 반듯하고 널찍한 묘석은 이오네스코의 연극적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외로운 남자』는 이오네스코가 쓴 단 하나의 장편소설이다. 예기치 않은 유산을 물려받고 인생 경주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로 작정한 남자. 유산을 물려받자마자 그가 속한 사회와의 모든 관계를 끊은 뒤 자발적인 유폐 상태에 스스로를 가둔 남자. 이 세계와 쉽게 화해하지 못한 채로 고집스럽게 개인의 삶을 이어나가며 그 자신의 존재의 불안과 세계의 의미를 낱낱이 따져보는 남자. 그런 식으로 나름의 명상적 방식이라고 할 만한 세월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만한 기이한 섬광과도 같은 계시의 순간을 목도하면서 끝나는 소설. 그것은 바로 이오네스코 그 자신의 독백이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대하는 그의 감각, 익숙한 생의 단면들에서 돌연 낯설고 부조리함을 간파해내는 그의 깨어 있는 의식, 그리고 그 천진하고도 슬픈 유머.

손이 곱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묘석의 표면에서 나른하고도 다정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묘석 앞에 서 있는데 묘석 위의 거대한 십자가 위로 내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나더니 흐린 하늘에서 해가 나왔다. 나는 묘석의 한 귀퉁이를 테이블 삼아 작은 수첩에다 어떤 문장들을 써내려갔다. 생전에 몽파르나스의 높다란 아파트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듯, 이오네스코가 어디선가 그 특유의 천진난만하면서도 사물을 꿰뚫어보는 두 눈으로 자신의 묘석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오네스코를 지나 몽파르나스에서 가장 화려한 무덤인 세르주 갱스부르의 묘석을 지나면 맞은편 대각선 방향으로 사뮈엘 베케트가 잠들어 있다. 베케트의 묘석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듯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묘지들에 비해 너무나도 소박한 묘석 위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이 오래전 누군가가 두고 간 장미꽃 한 송이만이 시든 채로 비에 젖어 있었다. 나는 그 단출함이 진정 베케트답다고 생각했다. 살아있었을 때 이미 스스로 사라짐을 실천했듯이 죽어서도 흐릿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유령처럼 누워 있는 모습에 왠지 모를 안도의 마음마저 들었다.

언어의 불완전함을 인식했던 베케트는 작품 속의 그 종잡을 수 없는 중언부언의 중얼거림과 과도할 정도로 끝없이 늘어놓는 내적 독백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작가라고 불린다. 제대로 말하기 위해, 제대로 침묵하기 위해, 침묵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침묵의 말의 재능을 타고난 작가. 그런 그였기에 부조리극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말년에 가서는 자신이 남긴 작품들을 "침묵과 무(無) 위에 남긴 불필요한 오점(an unnecessary stain on silence and nothingness)" 이라고 평했던 작가.

온 생애를 자신의 얼굴 위에 새긴 듯한 굵은 주름들 위로 맹수의 그것과도 같은 빛을 발하는 두 눈. 그의 얼굴은 부조리한 세계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존재의 유약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자신 앞에 놓인 현재의 삶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충실했던 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얼굴이야말로 그의 문학을 가장 잘 증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지 가는 길
화창한 날의 묘지 순례는 풍광 좋은 곳으로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날은 흔치 않았고 대부분 흐리거나 비가 왔다. 어떤 묘지는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이나 헤매야만 했고 또 어떤 묘지에서는 찾으려고 했던 묘석을 찾지 못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묘지 가는 길을 묻곤 했지만 묘지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가게 될 그 곳. 그러나 그토록 찾아 헤맸던 묘지는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다. 묘지는 이 세계의 곁에 옆에 안에 있었다. 그렇게 죽음은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버젓이 살아 있었다. 한쪽 어깨 위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올려놓고서 '오늘이 그날인가.', '오늘이 바로 그 마지막 순간인가.' 라고 물으며 순간순간을 생의 마지막 순간처럼 깨어 있는 연습을 했던 수행자들처럼 세계의 묘지들은 즉각적으로 생에 대한 깊은 명상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죽은 자의 시선으로 이 생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들숨 날숨을 천천히 반복할 때, 최후의 들숨이 멈추는 곳, 최후의 날숨을 내쉬기 바로 그 직전, 그 짧은 찰나에 우리 자신의 죽음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그렇게 죽음은 내 속에서 나의 호흡과 함께 매순간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한겨울의 묘지와 묘지를 거니는 동안 나는 내게 조금은 더 지칠 만한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 더 쓸 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는 조금만 더 나아가보자고 생각했다.

묘지에서 돌아나오다 무심코 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운동화 앞코에 젖은 나비 날개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비를 밟아죽였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건 내가 잠시 머물렀던 어느 무덤가에 피어 있던 무수한 꽃잎들 중 하나였다. 나비를 죽이듯 꽃을 죽이고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나는 내 속의 목소리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약간의 절망과 약간의 행복이 주머니 속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현대문학 2010년 5월호

2010.05.08 머리에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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